
90년대를 살아온 이들에게는 <우정의 무대>의 명 MC로 기억되고 있을 MC 이상용. 그에겐 언제나 이름 앞에 붙는 유명한 별명이 있는데 바로 ‘뽀빠이’다. 왜 그에겐 이런 별명이 붙었을까? 어린 나이의 이상용은 약골이었다. 어릴 때부터 허약하게 난 탓이었다. 5살 때 부터 이상용은 운동을 하기 시작했고, 청년기 때는 각종 헬스대회에 나가 입상을 했다. 그런 그의 이런 과거가 약했던 뽀빠이가 강해지는 것과 같았고, 방송에 데뷔하고 나서 그는 그의 이런 어린 시절 기억을 앞세워 뽀빠이의 이미지를 만들어 갔던 것이다.
위의 사진은 70년대 말의 뽀빠이 이상용의 모습이다. 이때 그의 나이 40세. 하지만 군살 없는 몸 짱의 모습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한때 마음고생을 당해 본의 아닌 흔들림이 있었지만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 여러 분야의 NGO로써 여전히 세상을 향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 여전히 어린 마음을 가진 천진무구한 뽀빠이 이상용. <우정의 무대>에서 씩씩하게 경례하던 그의 모습은 어쩌면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는 영원한 우리들의 뽀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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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뽀빠이, 아아 뽀빠이 -- 5. 이상용편
Tracked from 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2009/03/25 14:41 삭제내 안의 사람들<?xml:namespace prefix = o /> 이 글은 누구나 얻을 수 있을 정보를 근거로 쓰는 글입니다. 글에 언급된 사람들을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개인적인 접촉을 하거나 근거가 불확실한 뒷얘기를 찾아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들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알게 된 이야기까지 무시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공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사적으로도 위대한 인간은 존재하기 힘들다는 것을 전제로 글을 씁니다. 알려진 바와 달리 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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